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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조기교육은 오히려 독해력을 떨어뜨린다

한글 조기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독해력 수준은?

영국의 독서학자 우샤 고스와미(Usha Goswami) 연구팀은 아이가 글을 익힌 시기와 학업 성취도 간에 영향 관계를 분석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3개의 언어를 대상으로 실험 조건에 맞는 유럽의 아이들을 모집했다. 연구 결과, 5살에 글을 익혀 독서를 시작한 아이가 글을 늦게 배운 7살 아이보다 언어 학습의 성취도가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국내에서도 영국과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국내에서는 유아기의 한글 사교육 여부와 초등학생 1학년과 3학년 시기에 언어 능력 간에 영향 관계에 대해 종단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연구팀은 1차 조사에서 만 5세 유아 578명을 대상으로 한글 사교육 여부를 확인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연구팀은 2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2차 조사는 1차 조사 대상 578명 중 검사에 동의한 328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2차 조사에서는 관련 있는 언어 능력(단어 찾기, 오자, 맞춤법, 논리력, 독해력, 국어 학력)과 어휘력(그림선택, 유의어, 반의어, 어휘 점수)을 검사하였다. 2년 뒤 초등학교 3학년 시기에 3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3차 조사에 동의한 187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읽기 능력 및 어휘력을 검사하였다. 2차 조사 결과에서는 유아기의 한글 사교육 여부로 실험 집단을 구분하였다. 그 다음 초등학교 1학년 시기의 언어 능력 검사 점수를 비교하였다. 검사 결과는 우샤 고스와미 교수팀의 연구 결과와 거의 유사했다.

독해력의 경우, 한글 사교육을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값이 한글 사교육을받은 집단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독해력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지만, 한글 사교육을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값이 일관성 있게 높았다.

한글 조기교육과 뇌과학, 그리고 학습

최근 읽기 관련 연구물에서는 진화론적 관점을 도입하여 뇌와 읽기의 관계를 설명한다. 인류가 250만 년에 걸쳐 진화해왔다.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기간은 길게 잡아도 6000년에 불과하다. 이러한 진화론적 사실에 비추어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수백만년에 걸친 시간동안 뇌 구조는 수렵채집자로서 생존하는데 적합하게 유전적으로 진화하였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뇌가 글자 읽기를 위한 방식으로 진화해 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읽기에 특화된 뇌 회로를 갖추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 읽는 뇌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드앤은 글 읽는 뇌를 굴절 적응으로 한 사례로 가정한다. 굴절 적응이란 기존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그것의 본래 역할과 다른 역할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굴절 적응의 논리를 토대로 학습을 뇌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인간은 새로운 기술을 학습할 때 원시적 뇌의 신경망을 재활용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 신경망 재활용 가설이라 한다. 신경망 재활용 가설은 글자 읽기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글자 읽기는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수렵채집자로 설계된 뇌의 신경망을 재편성하여 새로운 프로세스를 구축한 결과이다. 문제는 원시적 뇌의 신경망을 읽기에 전용하는 학습 과정에서 부적응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임상사례가 난독증(dyslexia)이다. 난독증은 뇌가 본디 독서에 적합한 회로를 타고나지 않았음을 확실한 증거다.

난독증은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 글자를 읽거나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증세를 의미한다. 난독증의 대표적인 증상이 글자의 좌우를 반전시켜 읽거나 쓰는 거울 오류(mirror error)이다. 거울 오류는 좌우 변별에 민감하지 않은 뇌 구조상의 시각적 패턴 인식 방식에서 기인한다. 이는 뇌 구조의 시각적 특성이 난독증처럼 읽기 학습의 불완전성을 야기하는 유전적 제약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글교육은 뇌 구조상의 특성으로 인해 난독증을 비롯하여 정신병리학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을 동반한다.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 시간표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달한다. 인간의 자연적 발달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발달의 불균등성과 비균질성이다. 인간의 발달은 일정한 비율의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정 신체 부위나 정신기능이 특정 시기에 주로 발달하고, 그 이후에는 다른 부분이 주로 발달한다. 영유아기에는 발달적 변화의 진폭이 크다. 따라서 영유아기의 자연적 발달은 시간의 름에 따라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전개되지 않는다.

둘째, 발달 과정에는 진화와 동시에 퇴화라는 역발달이 공존한다. 발달 과정에서 퇴화란 특정 시기에 특정 기능이 점차 왕성해지다가 정점에 이르고 나중에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달 경로 상의 진화와 퇴화는 매우 밀접한 관련성과 의존성을 지닌다. 특정 시기에 왕성했던 행위들은 추후 고등 사고 및 행동 발달 유도를 위한 발판이자 바탕이다. 예컨대, 아기의 기는 행위는 향후 걷기에 필요한 근육을 발달시킨다. 이를 통해 아이는 걷기 시작한다. 걷기에 익숙해진 아이는 자연스럽게 기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움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역발달에 동반된 퇴화의 징후 역시 발달의 정상적인 경로로 간주된다.

조기교육의 위험성, 역발달 방해 요소

문제는 조기교육이 발달의 정상적인 경로를 왜곡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조기교육은 역발달의 퇴화 과정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이제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이에게 걷는 것을 미리 교육시킨다고 가정해보자. 기어다니는 시기는 고유한 발달 내용을 지닌 신체적 성장기이다. 조기 걷기 교육은 기는 시기에 이루어져야 할 신체적 발달을 불완전하게 만든다. 물론 이른 시기의 걷기 교육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빨리 걷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영아기에 기는 시기를 충실하게 보낼수록, 기초적인 신체 기능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다. 그 결과, 늦게 걷는 아이들이 오히려 향후 신체적 발달 및 능력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

반면에 조기에 걷기를 교육받은 아이들은 신체 발달상의 불완전함을 영구적으로 안고 살아야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조기 한글교육 및 독서가 신경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추론할 수 있다. 글자 읽기는 지각, 기억, 주의, 생각 등 정신기능 간의 복잡한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조기 한글교육 및 독서는 종종 정상적인 아동에게 정신병리적 징후를 야기하곤 한다. 그 원인을 추적해보면, 특정 시기에 역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기 한글교육 및 독서는 특정 시기에 아동이 숙달해야 할 정신기능의 발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신기능은 영유아기에 동시에 발달하지 않으며, 발달 속도 또한 고르지 않다. 조기교육이 아동이 정상적인 발달의 경로에서 이탈하게 만들며, 퇴행적인 면모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기숙‧김순환‧정종원(2011), 만 5세 유아의 읽기능력, 어휘력과 개인, 환경 변인이 초등학교 1학년 읽기 이해 능력과 어휘력에 미치는 영향, 『아동학회지』 32(6), pp.123-139.

위 글은 아래 논문을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방은수. (2021). 뇌과학 관점에서 한글교육의 적기에 관한 연구. 청람어문교육, 79, 159-178.